1. (성공한 쿠데타의 처벌) 성공한 쿠데타를 처벌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하여
피고인들이 1979.12.12. 및 그 다음날에 한 일련의 행위와 1980.5.17. 이후에 한 일련의 행위가 가사 반란과 내란에 형식적으로 해당한다 하여도 이것은 실제로는 정당한 행위로서 소위 성공한 쿠데타에 해당하므로 처벌할 수 없다고 피고인들은 주장한다.
살피건대, 헌법은 가장 상위에 있는 법규범이므로 모든 법률은 헌법에 부합하는 범위 내에서 합법성을 취득한다. 그러나 합법성이 바로 정당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므로 합법성이 있다 하여 반드시 정당성이 있는 규범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헌법의 배후 또는 상위에는 정의와 선 그리고 평화의 원리를 내용으로 하는 보편적인 법의 원칙이 존재하고 이를 자연법이라고 부른다면 이러한 자연법에 부합하는 내용의 헌법과 법률만이 정당성을 갖게 된다.
자연법은 만고불변의 것이지만 그에 대한 인식은 인간 이성의 개화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게 된다. 그리하여 어떤 국가의 헌법 내지 기본적 법질서가 자연법에 어긋나는 부당한 것이라는 인식이 그 사회에 팽배하여 마침내 그 불일치를 힘에 의하여 극복하려는 급격한 투쟁이 전개될 때 이것을 혁명이라고 부른다.
혁명은 현존하는 정치제도의 급격한 파괴와 새로운 기초에 바탕을 둔 신제도의 수립을 그 본질적 요소로 한다. 즉 현제도가 다른 제도로 급격하게 그리고 강제적으로 대치된다. 그 변화과정에서 발생하는 인명의 희생과 폭력은 광범위하고 국가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혁명이 성공하면 기존의 헌법과 이에 근거한 법률은 원칙적으로 폐지되어 효력을 상실하고 단지 혁명정부의 이념과 시책에 모순되지 않는 범위의 법규범만이 효력을 유지한다. 혁명정부의 합법성에 대한 도전은 허용되지 않으며 혁명행위를 반란이나 내란의 범죄로 인정하는 데 적용될 기존의 법률은 이미 효력을 상실하여 혁명행위는 더 이상 범죄가 아니고 따라서 이를 처벌할 수는 없게 된다.
이에 대하여 쿠데타는 그 정부형태에 따라 권력이 1인에게서 다른 1인에게로, 또는 어느 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이전되는 것으로서 이로 인한 변화가 정부 자체에 국한되고 전체 국민에 대한 영향은 최소한도로 제한된다는 특징이 있다. 쿠데타는 그로 인한 변화가 사회전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의 지도자가 교체되는 것에 그친다. 따라서 쿠데타는 혁명에 수반되는 광범위한 변화를 대개 초래하지 않으며 보통은 기존의 정부조직과 사법제도 그리고 사회제도가 정상적으로 유지된다. 쿠데타는 법이 정한 권력승계의 절차를 지키는 것처럼 가장하는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힘으로 강압하여 권력을 인수하는 것이다. 국가기관의 조직과 구성원은 대체로 유지되고 정부권력의 핵심구성원만이 교체된다.
그러므로 쿠데타가 성공하여도 기존의 헌법과 이에 기초한 법률은 효력을 상실하는 일이 없고 따라서 이와 같이 계속 효력을 유지하는 기존의 법질서를 근거로 하여 쿠데타정권의 불법성과 쿠데타행위의 범죄성을 추궁하는 문제제기가 빈번히 일어난다.
성공한 쿠데타정권은 법률적으로는 세가지의 얼굴을 갖는다.
첫째는 합법성의 측면이다. 쿠데타가 일단 성공하면 이 때 국가전체를 경영할 다른 대체세력이 얼마 동안은 없는 것이 보통이므로 쿠데타정권은, "국민의 안전과 복지가 최고의 법이다."(Salus populi suprema lex)라고 하는 국가긴급성의 이론(the theory of state necessity)을 부당하게 차용하거나, "실효성(efficacy)이 있는 것이 법이다."라고 하는 근본규범(grundnorm)이론을 확대적용하거나, 혹은 사실상의 정부(de facto government)라고 하여, 많은 경우 그 합법성을 인정받는다.
둘째는 불법성의 측면이다. 앞에서 본 것처럼 성공한 쿠데타정권이 합법성을 인정받는 실질적 이유는, 그 형식적인 이론구성은 여하간에, 쿠데타정권이 그 탄생의 범죄성에 불구하고 그 탄생 이후에는 기존의 헌법과 법률을 존중하고 이에 근거하여 권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선량한 정부(good government)가, 또는 합법적인 구정권이, 질서를 유지하고 국민의 안전과 복지를 위하여 행하였으리라고 가정할 수 있는 그러한 조치를 쿠데타정권이 취하는 경우에는 최소한 그 범위 내에서 쿠데타정권의 조치에 대하여 합법성을 부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쿠데타세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국민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억압하고 그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를 자행하는 것은 기존의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는 것이 아니다. 형식적으로 헌법이 개정된 경우에도 그 개정 전후의 동일성이 유지되는 한 문제는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이러한 행위들에 대하여는 합법성이 부여될 수 없고 그 행위들의 불법성 낙인은 피할 수 없으며 그 범위 내에서는 정권 자체의 불법성을 면할 수 없게 된다.
셋째는 쿠데타 자체의 범죄성의 측면이다. 쿠데타정권의 합법성과 쿠데타행위 자체의 범죄성의 문제는 구별하여야 한다. 쿠데타정권이 전면적이든 부분적이든 합법성을 부여받는다고 하여 쿠데타정권을 탄생시킨 반란 또는 내란의 범죄행위적 본질이 소멸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존의 헌법과 법률은 쿠데타가 비록 성공하여도 그 효력을 잃는 일이 없고 따라서 기존의 법률에 의하여 쿠데타가 반란이나 내란에 해당하여 범죄가 된다면 이 점은 쿠데타정권이 합법성을 부여받는다고 하여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쿠데타정권에 대한 합법성의 부여는 쿠데타 이후의 장래에 대하여 행하여지는 것 뿐이지 그 이전으로 소급하여 이루어지는 것은 원칙적으로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공한 쿠데타의 경우에도 쿠데타행위 자체는 범죄로서 마땅히 처벌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쿠데타가 처벌되지 않는 것은 법을 집행하는 사람의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원래 법을 집행하는 것은 사람이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의 힘이 집행대상자의 힘을 제압할 정도로 우세하여야 법은 집행되는 것이고 이와 반대로 집행대상자의 힘이 법집행기관의 힘과 대등하거나 오히려 우세한 경우에는 법의 집행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성공한 쿠데타의 처벌문제는 법의 효력이나 법의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법의 집행의 문제인 것이고 바꾸어 말하면,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인 것이다.
이 사건에서 보면, 뒤의 범죄 사실란에서 인정하는 바와 같은 피고인들의 군사반란과 내란행위는 이 사건 기록에 나타난 그 당시의 사회상황, 그 전개의 전후과정, 피고인들이 표명한 주장, 그리고 그 결과를 종합하여 평가할 때에 이를 혁명이라고 할 수는 없고 대신 하나의 군사 쿠데타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발생 당시의 형법과 군형법에 의하면 이것이 내란과 반란의 범죄를 구성하는 것도 뒤의 범죄사실 인정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분명하며 위 형법과 군형법의 해당 조항이 그 뒤에 효력을 상실한 바 없음 또한 명백하다. 이러한 경우에 쿠데타를 처벌하는 것은 법의 효력이나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법의 집행과 실천의 문제라는 것 또한 이미 위에서 밝힌 바이다. 그렇다면 피고인들이 일으킨 반란과 내란이, 성공한 쿠데타에 해당하여 처벌될 수 없다는 법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따라서 이와 다른 피고인들의 주장은 이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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